호주의 에뮤 전쟁(Emu War, 1932), 인간과 새의 사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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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역사에는 수많은 전쟁과 사건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이례적인 전쟁이 하나 있다. 
바로 "에뮤 전쟁(Emu War)"이다.
1932년 호주 정부는 뜻밖의 적을 상대하기 위해 군대를 동원해야 했다.
이 적은 어떤 강력한 군대도, 침략자도 아닌 바로 호주 대륙의 토종 새, "에뮤(Emu)"였다.
이 글에서는 호주와 에뮤의 전쟁이 왜 시작되었으며, 
어떤 전개를 거쳐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를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살펴보겠다.

 

호주농민과 에뮤.webp

1. 전쟁의 배경: 호주 농민과 에뮤의 갈등

1920년대 후반, 세계는 대공황(Great Depression)의 여파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호주도 예외는 아니었다.
특히 1차 세계대전(1914~1918)이 끝난 후,
전쟁에 참전했던 호주 군인들에게 정부는 서부 호주의 넓은 토지를 제공하며 농사를 짓도록 장려했다.
그러나 이 지역은 농사에 적합한 곳이 아니었다.
개척자들은 예상보다 더 척박한 땅에서 농사를 지어야 했고,
몇 년 후부터는 극심한 가뭄까지 겹쳐 작황이 좋지 않았다.

이때 등장한 또 하나의 문제는 "에뮤 떼"였다.

"에뮤는 호주의 토종 새로, 키가 1.8m에 달하고 시속 50km까지 달릴 수 있는 날지 못하는 조류다."

보통 에뮤들은 서부 호주의 내륙 지역에 서식했으나,
가뭄으로 인해 먹을 것을 찾아 농경지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호주 정부가 배급한 밀을 보고 에뮤들이 몰려들었고,
무려 2만 마리 이상의 에뮤 떼가 농경지를 습격하면서 밀 농사를 망쳐놓았다.

"이대로라면 농사를 망친다. 정부는 즉각 해결책을 마련하라!"
이에 절망한 농부들은 호주 정부에 "에뮤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요청했고,
정부는 군대를 동원하여 에뮤를 제거하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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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호주 정부의 대응 : 군대가 나서다

농민들의 요청을 받은 호주 정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차 세계대전 참전 용사였던 G.P.W. 머레디스(G.P.W. Meredith) 소령을 중심으로 군 작전을 기획했다.

[작전 개요]
부대 규모 : 호주 왕립 제7기갑연대(7th Royal Australian Regiment) 소속 군인 3명
무기 : 루이스 기관총 2정, 탄약 10,000발
목표 : 서부 호주 지역에 서식하는 에뮤 개체수를 대량으로 줄이는 것

이렇게 에뮤를 제거하기 위한 군사 작전이 공식적으로 시작되었다.
1932년 11월 2일, 군인들은 에뮤가 많은 지역으로 이동하여 작전을 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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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전쟁의 시작: 예상 밖의 난관

첫 전투에서 군인들은 약 50마리의 에뮤 떼를 발견하고 사격을 시작했다.

"사격 개시!"

그러나 에뮤들은 놀라운 속도로 달리며 총알을 피하기 시작했다.

"이 녀석들이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군!"

군인들은 조준을 다시 맞추려 했지만, 에뮤들은 일렬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분산되어 도망쳤다.
이날 약 12마리의 에뮤만 사살할 수 있었고, 나머지는 모두 달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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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전술 변경과 에뮤들의 반격

첫 번째 시도가 실패하자, 군인들은 에뮤를 더 효과적으로 사냥하기 위해 전술을 변경했다.

[1차 전술 : 매복 공격]
- 에뮤들이 자주 나타나는 물가 근처에 병력을 배치
- 에뮤가 가까이 오면 기습 공격

그러나 실패. 에뮤들은 의외로 경계심이 강했고, 총소리를 듣자마자 흩어져 도망쳤다.

[2차 전술 : 이동식 사격]
- 트럭에 기관총을 장착하여 에뮤를 추격하며 사격

또 실패. 트럭이 험한 지형에서 제대로 이동하지 못했으며, 에뮤가 트럭보다 더 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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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전쟁의 결과, 호주의 패배

"이제는 우리가 총을 드는 것이 아니라, 새들이 승리를 선언하는 것이다."

군인들은 계속 사격을 가했으나,
10,000발의 탄약을 소비한 결과 약 900마리의 에뮤만 사살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여전히 2만 마리 이상의 에뮤가 남아 있었고, 농작물 피해는 계속되었다.

결국 1932년 12월 10일, 호주 정부는 에뮤 퇴치 작전을 중단했다.

[호주 의회의 공식 성명]
"에뮤들은 호주군보다 우수한 기동성과 전술을 갖추고 있음을 인정한다."

머레디스 소령은 작전 실패 후 이렇게 말했다.
"에뮤들은 단순한 새가 아니다. 그들은 탄환을 맞아도 쓰러지지 않는 불사조와 같다."

(에뮤 깃털은 방탄기능이 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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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전쟁 이후... 어떻게 해결했을까?

결국, 호주 정부는 군사적 해결이 불가능함을 인정하고, 
농민들에게 보조금을 지급하여 에뮤 침입을 막는 울타리를 설치하도록 했다.

이후 철조망과 방목견을 이용한 방어 시스템을 도입하며 농작물 피해를 줄여갔다.
에뮤들은 오늘날에도 호주에서 보호받는 동물이며, 국가적인 상징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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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인간과 자연의 싸움에서 배운 교훈

에뮤 전쟁은 단순한 농업 문제를 해결하려다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은 사건이었다.
호주는 군대까지 동원했지만, 결국 자연을 이기는 것은 쉽지 않다는 교훈을 얻었다.

- 이 사건은 오늘날까지도 "역사상 가장 기묘한 전쟁"으로 남아 있다.
- 호주 역사에서 "군대가 조류에게 패배한 유일한 사례"로 기록되었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묻는다.
1) "호주는 에뮤와의 전쟁에서 정말 패배한 것인가?"
2) "아니면, 에뮤들이 전략적으로 호주를 압도한 것인가?"

"역사는 에뮤들의 승리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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